역사책을 보면 1119년 유럽에 이상한 단체가 하나 등장한다. 템플기사단이라고 불리는 단체다. 아홉 사람의 기사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산에서 뭔가를 찾기 위해 9년을 보낸다.
이들이 무슨 보물을 찾았는지는 몰라도 기사단은 그것으로 1307년 10월 13일(금요일)에 프랑스왕 필리프 4세에 의해 와해될 때까지 로마의 교황청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엄청난 파워를 행사했다.
이 단체의 종교적, 비의적 의미는 움베르토 에코가 '푸코의 진자'에서 잘 묘사하고 있고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로 대중성마저 띠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단체가 국제금융의 시조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럽과 중동에 걸치는 막대한 재산과 조직망, 그를 통해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통해 이들은 최초의 글로벌 금융기관의 역할을 했고 우리가 사용하는 수표와 환어음의 원형도 이들이 고안해냈다는 주장이 있다.
그로부터 약 800년 후인 1927년에 지구상에는 세계화를 촉발시키는 세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무착륙으로 비행했고 헐리웃에서는 '재즈싱어'라는 제1호 발성영화가 개봉되었으며 JP 모건이 ADR을 만들어 냈다.
국제금융은 세계화의 힘을 입고 진화를 계속해서 20세기는 글로벌 투자금융기관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무역금융과 대부로 시작된 국제금융이 파생금융상품과 고도의 투자기법으로 글로벌 경제의 신경망이 되었다.
스티븐 호킹 교수가 말하는 '신의 마음'을 알기 위해 직경이 27 킬로미터나 되는 입자가속기의 완공을 앞두고 있는 제네바의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이 1991년에 만들어 낸 인터넷은 이제 세계의 금융시장을 완전히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템플기사단으로부터 거의 1000년이 흘렀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21세기 국제금융시장은 '헤지펀드'라는 주연을 탄생시켰다. 2000년 초에 롱텀 캐피탈이라는 펀드가 도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펀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파트너로 참가했던 유명한 펀드다.
헤지펀드는 이 사건으로 세간에 유명해졌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영국 중앙은행과 힘겨루기를 할 정도다. 이제 UBS, 골드만삭스 같은 유수의 투자금융회사들과 칼라일 같은 사모펀드들이 헤지펀드에 투자하거나 설립을 서두른다.
연기금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미국 예일대학 기금의 25%가 헤지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헤지펀드 투자전략과 헤지펀드에 대한 대응책이 온갖 세미나에서 다루어진다. 헤지펀드는 마치 이 시대의 금융 총아와 같아 보인다.
헤지펀드는 파생금융상품을 대표로 하는 첨단 금융기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공격적인 투자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개입으로 뉴스의 초점이 된다. KT&G 사건에서 보았듯이 칼 아이칸과 같은 유명한 레이더들과도 연합한다.
독일의 다임러크라이슬러 같은 거대 기업들도 헤지펀드를 부담스러워 한다. 헤지펀드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서 투자자들의 이익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본시장의 역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투자자와 경영자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이 발효하면 본격적인 투자은행의 시대가 열리고 파생금융상품시장이 활성화 될 전망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서구에서는 템플기사단이 예루살렘에서 찾았던 것이 바로 인류 최고의 보물인 성배(Holy Grail)라고 주장하는 책이 넘쳐난다. 아니면, 최소한 그에 대한 지식이나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파워가 교황뿐 아니라 영국왕도 꼼짝 못하게 할 정도였으니 그런 추측이 나올 법도 하다.
요즘 미국에서는 헤지펀드가 최적의 기업지배구조를 찾아 헤매던 학자들에게 성배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 말대로 헤지펀드가 현대 자본시장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기관투자자라면 기업지배구조 연구의 역사는 세계 금융시장의 천년 역사를 거쳐 이제 그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을 계기로 헤지펀드의 강단과 위험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시작할 때다. 토종 투자은행들의 실력도 시급히 늘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와 기업금융, 기업공시에 관한 법령들도 변화하는 자본시장에 맞추어 재정비 되어야 할 것이다.
십자군의 기사들은 성배를 가지고 말을 타고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현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보이지 않는 큰 손들은 인터넷을 타고 우리 시장으로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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